흰 바람벽이 있어 - 백석
백석은 외롭다. 그래서 그의 시도 외로운 것 같다. 사랑했던 여인을 친구에게 뺏겨버리고, 타지에 혼나자와 삶을 살아가는 그가 느끼는 외로움이, 시를 읽어가는 사람에게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.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(十五燭)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.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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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0. 7. 14. 09:43